Page 47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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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려는 수좌들의 뜻이 모아져 새 주지에 지유스님이 임명되고, 실질적
인 주지 일은 총무를 맡은 고우스님이 맡게 되었다. 도량을 책임지는 도
감都監은 법연스님이 맡았다.
당시 봉암사에는 놀랍게도 선방이 없었다. 지금이야 한국불교를 대표하
는 참선 도량이자 대한불교조계종의 유일한 종립선원이지만 1969년 제2
결사 당시 봉암사 사정은 그랬다. 참선 대중이 한 곳에 모여 정진할 공간
이 없었다. 그래서 각자 여러 전각에서 자유롭게 정진했다. 그러니 당시 봉
암사 정진 분위기는 자유와 자율 그 자체였다. 예불과 공양 때는 한 곳에
모여 예불, 공양하고는 각자 전각에서 좌선할 사람은 좌선하고, 경을 볼 사
람은 경을 보고, 포행할 사람은 포행하는 그런 정진 분위기였다.
봉암사 살림은 여전히 어려웠다. 양식이 떨어질 때면 누구라고 할 것 없
이 알아서 탁발 나가서 양식을 구해 오면 그것으로 같이 공양하고 정진했
사진 3. 1970년대 봉암사. 문경 고등학생들이 소풍 온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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