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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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유스님은 봉암사에서 같이 정진하는 것은 좋지만 주지는 꿈에
도 생각해 보지 않았노라고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래서 일단은 봉암사에
서 같이 살기로 하고 지유스님을 봉암사로 모셨다. 그리고는 스님들이 지
유스님을 적극 설득했다. 봉암사가 참선 도량이 되려면 수좌 중에 누가 주
지를 맡아야 하는데, 맡을 분이 스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그래도 지유스
님은 거절하였다. 대중들은 하는 수 없이 정 그러시면 이름만이라도 빌려
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마침내 이름은 빌려주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다만 이름만 빌려주는 것이니 절 살림이나 사무는 일체 맡지 않는다는 것
이 조건이었다.
봉암사 주지에 지유스님, 총무에 고우스님
지유스님이 봉암사 주지를 맡기로
는 했지만 이름만 걸고 절 살림과 사
무를 누군가 맡아야 했다. 결사 도반
들은 자연스럽게 고우스님이 맡아 하
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미 김용사 총무 소임도 맡아 보았고,
또 봉암사에 들어오기까지 좌장 역할
을 해 왔으니 봉암사 일도 고우스님
사진 2. 봉암사 제2결사 첫 총무 고우스님 이 맡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가 되었
다. 고우스님도 사사로운 이해 관계를 떠나 대중을 위하는 일이고 수좌 도
량의 봉암사를 위한 일이니 마음을 내었다.
이렇게 구산선문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봉암사를 참선 도량으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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