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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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운주사 석불군.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민속마을로 바뀌었다. 안향安珦(1243~1306) 선생의
후예인 나의 장인어른은 이 도래마을의 홍부자집 막내 따님에게로 장가를
가셨다. 나주평야의 넓은 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홍씨 집안은 우리 역사
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겪기도 했는데, 동백나무와 비자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덕룡산德龍山 불회사佛會寺(=佛護寺)에 시주를 많이 했던 단월檀越이기
도 했다. 지금의 불회사는 옛날 어려웠을 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새로 단장되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은 더 온순해지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
어 마음은 고요해지고 어지러운 정신은 차분해진다. 초록빛으로 대지가
물들어가는 봄날도 좋고, 흰 눈이 대지를 온통 덮어 백설白雪의 고요 속으
로 빠져들게 하는 겨울 풍경도 좋다. 아예 한여름 염천炎天 아래 이마에 흐
르는 땀을 닦으며 더운 바람이 부는 들판을 지나 천불산 골짜기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보는 것도 또한 좋다.
운주사에는 여러 번 왔다. 처음에는 이상한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하여 먼 길을 찾아왔다. 다른 곳에서 보던 사찰과는 너무 달라 이상했
다. 흙먼지가 날리는 절은 가난하여 승려들이 보이지 않았고, 들판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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