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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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 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기록이 있다. 석탑과 석불이 골짜기를 가득
매울 만큼 많아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아니면 진짜 각각 1000개씩 있어서 그
렇게 기록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전체 주위를 살펴보아도 석불과 석탑이 각
각 1000개씩 들어설 만한 공간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무거운 돌로 만든
탑과 석불이 그렇게 많이 사라지다니 이것도 이상하다(사진 2).
다양한 운주사의 창건설화
운주사의 전체 모습은 삼국시대 이래의 사찰들과 비교할 때 너무 예외
적이어서 그 창건설화도 구구하다.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없으니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이야기들이 보태어졌다.
신라 때의 고승 운주雲住화상이 신령한 거북이 옮겨주는 돌로 석탑과 석
불을 조성하였다는 이야기, 무속신앙에서 세상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는
마고麻姑할미가 지었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이 평생 이 골짜기에 석불과 석
탑을 만들어 채웠다는 이야기, 석공들이 석불과 석탑을 만드는 연습장이
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등등. 이런 것만 있겠는가. 이야기꾼들이 만들어 내
기 나름이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있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풍수風水 이야기다. 풍수지리라고 하면 늘 등장하는
인물이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다. 그는 한반도는 배의 형상이기에 바다
에서 배가 뒤집히지 않으려면 선복船腹이 무거워야 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선복인 이곳에 천불천탑을 쌓아 무겁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반도 지
형상 영남에는 산이 많고 호남에는 산이 적어 배가 무거운 동쪽 영남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술을 부려 하
룻밤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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