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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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4호 | 풀어쓴 『선문정로』 9     돈오, 혹은 견성이라고 표현되는

                                             깨달음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좌선
                                             을 하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일찍이 남악스님은 좌선에 매진하던
             무념이 깨달음의                        마조스님을 향해 수레가 가지 않는다

             핵심내용이다                          고 수레를 때릴 거냐고 힐문한 바 있
                                             다. 그렇다면 금과옥조 같은 선지식

                                             의 가르침을 들어 말끝에 깨닫기를
              강경구
                                             기약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
                                             성철스님은 “내 말에 속지 말라”고
                                             간곡히 가르쳤다.




                                               무심과 의심,
                                               깨달음의 필수적 조건



                                               그렇다면 좌선도 아니고 금과옥조

                                             의 가르침도 아닌가? 그렇게 말해서
                                             도 안 된다. 선종의 역사는 혹은 좌선
                                             을 통해, 혹은 선지식의 말끝에 깨닫

                                             는 장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기

               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좌선을 했기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
               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         에 견성했을까? 어떤 가르침을 들었
               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          기에 돈오했을까?
               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렇게 묻고 보니 이런 식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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