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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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무심의 구현을 위해 굳이 좌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6조스님 같은 선지식을 찾으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큰 선지식을 만나는 일은 맹구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을 필요로 한다. 그런
데 우리의 눈길을 혜명스님에게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전법 가
사라는 영예를 탈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
로 6조스님을 따라잡았다. 그에게는 간절함이 넘쳤다.
‘출가 전 장군이었을 때처럼 용맹한 기세로 장좌불와의 닦음을 실천했음
에도 나는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저 이는 어떻게 행자의 신분을
떼기도 전에 전법의 가사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간절함이 그를 달리게 하여 완전히 마음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대
유령의 설법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만나는 모든 것
이 선지식이다. 향엄스님에게는 그것이 대나무에 돌 부딪치는 소리였고,
서산스님에게는 그것이 대낮에 닭 우는 소리였다. 현사스님은 돌뿌리를 걷
어차는 순간 깨달았고, 영운스님은 복숭아꽃을 보고 깨달았다.
이들은 바람이 가득 차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풍선과 같은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들을 수 있는 법문, 항상 접하는 유정무정의 계기에
‘꽝!’ 하는 깨달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때 풍선을 채우는 바람이 바로 간
절함이다. 이 간절함은 우리를 특정한 경계에 머물지 못하도록 밀어붙인
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어버이의 마음과 같다. 어떤 절경
도 그를 멈춰 세우지 못하고, 어떤 산해진미도 그를 자리에 앉히지 못한다.
무념의 바른 의미
수행자를 가득 채운 간절함 앞에 내적 망념이나 외적 경계는 힘을 잃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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