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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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것이 무념이다. 다만 이 무념은 밝게 깨어 진여와 함께 하는 상태이
지 아무 생각이 없는 무지각의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무념을
‘없는 생각’으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
흔히 ‘무념無念’이라 하니까 ‘생각이 없다’고 새깁니다. 또 ‘무심無心’
을 새길 때도 ‘마음이 없다’고 새깁니다. 그런데 생각이 없다고 하
거나 마음이 없다고 하면 단견에 떨어집니다. 그러니 ‘무無인 심心’
즉 ‘없는 마음’이라 하거나 ‘무無인 염念’ 즉 ‘없는 생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일체 진로의 두 가지 모양이 없는 염이라는 말입니다. 이
렇게 해야 바로 새기는 것이지, ‘염이 없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자
칫하면 단견에 떨어져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념법문의 완성자인 6조스님 스스로도 무념과 관련하여 “만약 아무 생
각도 하지 않고, 모든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린다면 그것은 큰 잘못” 이라고
했다. 무념이라고 해서 의식 활동을 멈추어 무생물처럼 되는 일이 아니라
는 말이다. 오히려 그것은 인지 작용의 본래적 완전함과 생생함을 회복하
는 일이라고 해야 옳다. 혜명스님이 고백한 것처럼 ‘찬 물을 마시면 찬 줄
알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 따뜻한 줄 아는’ 완전하고 직접적인 앎이 일어나
는 자리가 바로 무념이다. 이러한 앎에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전체 법
계가 바로 자신이라는 확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념은 죽음과 같은 무지
각이 아닌 것이다.
당나라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죽음과 같은 무념에 대한 기록
들이 보인다. 그 중 달차시라국呾叉始羅國 동남쪽의 석실에 7백여 년간 선
정을 유지하는 두 아라한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그 머리를 깎아주고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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