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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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초창기 부산대학 교사校舍.         사진 7. 국민대학교 첫 교사校舍.
          의 총무부장으로 일하면서 1946년 경상남도 불교 교무원을 통해 고성 옥

          천사 전답 13만 5천 평을 부산대학 설립기금으로 희사하게 했다. 대신 경

          상남도로부터 일제 강점기 입정상업학교의 적산 부지와 건물을 불하받아
          불교계 학교인 해동중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1947년에는 해인사 주지
          가 되었고, 또 국민대학을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뒤에 학내 문제

          로 물러나야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위한 5·10선거 때 경상남도 사천·삼천포의 제
          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전쟁 중인 1951년에는 해인중학교와 해인고등
          학교를 세웠고 1952년에는 해인사 해인대학의 이사장 겸 학장이 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사천 다솔사의 조실로 있으면서 원효의 저작 및 사상,

          초의선사를 필두로 한 한국의 다도 연구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차밭을 일
          구어 ‘반야로’라는 차를 만들었고 다도의 입문서를 집필해 펴냈다. 그는 초
          의의 『동다송東茶頌』을 번역해 대중에게 알렸고, 그를 한국 다도의 중흥조

          로 자리매김했다. 1973년에는 전해 받은 한용운의 유고를 모아 『한용운 전

          집』을 신구문화사에서 출간했다.
           최범술은 1979년 7월 10일에 입적했고 출가 사찰이자 주요 근거지였던
          다솔사에 탑이 건립되었다. 1969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고 1986

          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저술로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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