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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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중국의 문화는 없어지고 만다.”고 한 자부심
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죽으면 천지의 빛이 변할 것이고 역사의 궤도
가 바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평생 중국문화의
계승자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직후 유럽에는 문
사진 2. 양수명의 『동서문
명 파산이라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었 화의 철학』 한글
번역서.
다. 양계초는 『구유심영록』에서 미국의 유명한 신문
기자와 대화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사이몬
이라는 그 기자가 “당신은 중국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할 작정인가요? 서양문명을 가지고 돌아가려
고 하나요?”라고 묻자, 양계초는 “그야 당연하지
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기자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아, 불쌍하
사진 3. 양수명梁漱溟
네요. 서양문명은 이미 파산했는데요.”라고 말했고, (1893년~1988년).
양계초는 그에게 “당신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려고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는 돌아가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당신들이 중국 문명을 가져다가 우리를 구해 주기를 그냥 기다리겠소.”라
고 말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인생관에 변화가 일
어나고 철학이 흥성하고 종교가 부활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결론이다. 이
같은 유럽문명의 비관적 분위기는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양수명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지배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생 문제와 중국 문제라고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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