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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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를 비롯한 연세대 교수들과 교류를 이어갔는데, 한국 과학사 연구
의 태두인 역사학자 홍이섭도 그중의 하나이다. 또 도서관장을 역임한 신
학과 한태동과도 친분을 맺었는데, 그의 부친 한진교는 상해 임시정부에
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최범술은 1937년 해인사에서
인출한 고려 재조대장경 1부를 1976년에 연세대에 기탁하게 되었다.
1973년에는 『건국대학교 학술지』 15에 「판비량론 복원 부분」이 실렸다.
『판비량론』은 원효의 유식학 관련 주석서로 불교 논리학의 정수가 담겨 있
는데 단간으로 일부만 전하고 있다. 한편 앞서 1937년에 대장경 인출을 감
독하면서 대장경 판목뿐 아니라 사간장 경판까지 포함시켰는데, 서적의 목
록과 서지 사항 등을 검토하다가 의천의 『대각국사문집』을 발견했다. 그리
고 그 판본이 현행본과 다르다는 조사 결과를 『동방학지』 11(1970)의 「해인
사 사간 누판 목록」에서 소개했다. 그는 의천이 『원종문류』의 「제화쟁론」에
서 동이同異·진속眞俗·색공色空 등으로 원효의 화쟁 구조를 파악했음을
강조했다. 한편 원효의 『십문화쟁론』의 복원을 위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그 성과가 「『십문화쟁론』 복원을 위한 수집 자료」로서 『원효 연구논총-그
철학과 인간의 모든 것』(1987)에 추후 수록되었다.
최범술은 불교가 갖는 보편성과 신라의 특수성을 접목하려는 시도로써
원효 사상의 주체성에 주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그가 국학을 추구
했다고도 하는데, 일본에 유학하면서 에도시대의 국학 및 국수주의 전통
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사상이 갖는 고유성
의 원형을 원효에게서 찾고 그것을 통해 한국 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체계
화하려 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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