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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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동안에 무념이 현전한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분별에 의한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상정의 무념은 제
             한적이다. 마치 돌로 풀을 눌러놓은 것 같은 상태라서 잠깐 방심하는 사이

             독초의 밭이 복원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별의식을 넘어선 차원을 짐작

             조차 하지 못한다. 설암스님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매번 잠에 들어 꿈을 꾸거나, 생각하거나, 보거나, 듣는 일이 없어

                  지는 자리가 되면 이때 상대되는 두 기둥이 세워져 의미로 이해되

                  는 공안은 깨달아 알 수 있었지만, 은산철벽과 같이 길이 끊긴 것
                  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측백나무를 보고 생사의 의혹이 끊어진 설암스님



               설암스님은  ‘꿈이  없는  잠이
             들면 상대되는 두 기둥이 세워

             져’ 숙면시에 여일하지 못한 상

             태에 있었다. 이 차원에서 의미
             로 이해되는 공안을 깨달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식이 작

             동하는 차원에서는 문제가 없었

             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은산철
             벽과 같이 길이 끊긴 자리는 알
                                            사진 1. 설암조흠 선사.
             수 없었다’고 했다. 의식을 벗어

             난 차원에서는 막막할 뿐이었다는 뜻이다. 성철스님이 비판하는 분별적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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