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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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상태까지 지배한다. 그러니까 숙면시에 밝은 관찰이 유지된다면 그
것은 곧 아뢰야식의 극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뢰야식의 전
환이나 타파는 유식의 논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지에 해당한다. 또 그
전환이 일어나는 숙면일여는 선의 역사에서 보면 설암스님, 고봉스님, 대
혜스님, 몽산스님 등은 물론 우리나라의 태고스님이나 나옹스님들이 두루
제시한 기준이다.
오매일여론에 대한 비판
그런데 이러한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그것은 대체로 문헌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주장, 실제로 구현될 수 있
는 경계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묶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문헌적 근거가 박
약하다는 주장은 성철스님의 편의적 문장 인용을 문제 삼는다. 전체적 맥
락을 무시한 단장취의적 인용과 아전인수적 해석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철스님의 문장 인용은 편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맥락을 무
시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맥락을 읽는 안목에 의한 것이다. 앞에 예로 든 설
암스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해당 문장만을 가지고 보자면 설암스님이
오매일여를 성취했다고 말했다는 증거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뒤이어 제시한 바, 고봉스님을 경책하는 문장을 함께 고려하면 얘기가 달
라진다. 설암스님이 깨닫기 전에 성취한 경계가 숙면시에 항일한 경계였
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바를 가지고 제자들을 점검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고스님이나 나옹스님의 경우는 숙면일
여를 구체적인 점검항목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오매일여가 실현 가능한 경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의식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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