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P. 32
뿌리이다. 그런 점에서 아뢰야식이 말끔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무협지의 주인공
이 동굴 깊이 숨은 최후의 악당 두목을 무찌
르는 일과 같다. 악당 두목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그 분투는 끝날 수 없다. 그 최후의 결투
사진 3. 무협영화의 고전 신용문객잔 가 벌어지는 현상이 숙면일여의 차원이다.
의 포스터.
원칙적으로 보자면 깨어 있는 일상에서
도 거친 분별 의식이 사라지면 부처님과 조사님이 제시한 자리를 보게 된
다. 그 눈뜸은 궁극의 깨달음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
는 일과 직접 그렇게 되는 일은 다르다. 이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것
이다. 그래서 박성배 같은 학자는 불교적 눈뜸을 깨달음(아는 일)과 깨침(존
재가 바뀌는 일)으로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당장 꿈속의 일을 돌아보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되던 시비호오가 분
연히 되살아나 눈뜨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황금을 얻으면 기뻐하고 정
든 사람과 헤어지면 슬프다. 표층 의식 차원의 눈뜸으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화두를 들어 다시 심층의 공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몽중에도 밝은 화두가 지속되는 차원에 진입한다. 이 단계
가 되면 의식의 레이더에 잡히는 망념이 없다. 그렇지만 악당 두목의 소문
이 어디선가 들려오듯 미진한 것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꿈 없는 숙면 중
에 주재하는 주인공이 사라져 캄캄함에 빠져 버리는 일이 있다. 이 캄캄한
흑암의 굴속에서 도대체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밝게 알아야 한
다. 그래야 그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면시에도 밝은 화
두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오매일여의 주장이 제시되는 지점이다.
유식에서는 아뢰야식의 전환, 혹은 타파를 주장한다. 이 아뢰야식은 숙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