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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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넘는 정신활동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이 언
급했던 오매일여는 불이론의 수사적 표현이었거나, 망상이었거나, 하나의
화두였거나, 공부의 방편이었거나, 심지어 거짓이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이론의 원칙에 대한 수사적 표현이 따로 있고
실경계가 따로 있다는 말이 과연 성립 가능한 것일까? 일상시와 숙면시가
둘이 아님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숙면시를 직접 확인하는 밝은 관
찰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과 사가 일여하다고
말하려면 죽음의 차원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성철스님은 사경을 헤매는 병중에도 화두가 여일함을 확인하고 그 ‘똑같
음’을 증언한 바 있다. 오매일여의 주장 역시 직접 숙면시를 확인하는 밝은
알아차림이 있었으므로 그 ‘똑같음’을 그토록 자신 있는 어투로 거듭 말한
것이라고 믿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 요컨대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은 이
론적 근거가 분명하고 실천적 사례의 제시가 충분하다. 사족에 가깝지만
다른 문화권의 명상가인 켄 윌버의 다음과 같은 기술을 더하여 제시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꿈꾸는, 그리고 잠자는 상태 모두를 관통하는 이 항상
적 의식은 다년간의 명상 이후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
나서는 깊은 꿈 없는 잠의 상태로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의식이 있다.
어떤가? 혹시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그렇지만 잠깐만! 이 모든 논의는
우리의(우리가)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이 이끄는 공부 길을 따라 매진함으
로써 성철스님을 따라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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