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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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삼관에 의한 점검과 완전히 겹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나’
             는 고봉스님이다. 고봉스님은 20살에 3년의 기한으로 참선을 시작한 뒤
             치열한 수행을 거쳐 24살에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견처를 얻었

             다. 스스로 기왕의 화두들을 점검해 보아도 틀림이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

             도 스승인 설암스님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위 예문에 든 것과 같이 ‘꿈
             도 없는 숙면시에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막혔기 때문이다.
             고봉스님은 이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여 5년간 화두 속에서 살다가 도반

             의 목침이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았다.

               숙면시에 항일한 오매일여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의식 차원의 삼
             매는 의식 차원의 깨달음을 이끈다. 그렇지만 우리를 흔드는 파도의 물결
             은 의식의 차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잠재의식도 있고 무의식도 있다.

             다만 성철스님은 제7식의 잠재의식을 분별의식의 범주에 포함하여 함께

             다룬다. 그래서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동정일여와 몽중일여는 분별의식의
             범주라는 점에서 크게 같고[大同], 그 한결같음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작
             게 다르다[小異].




                모든 번뇌의 근원 아뢰야식


               이에 비해 의식을 넘어선 숙면일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무의식

             의 차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아뢰야식은 모든 번뇌의 원류에 해당한다. 아

             뢰야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분별의 작용은 미세하여 의식의 레이더에 잡
             히지 않는다. 의식의 차원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존재를 지배하는 그것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뿌리가 깊다. 이 아뢰

             야식, 더 정확히 말해 아뢰야식 최심층의 무명이야말로 만악의 원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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