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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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이해되는  부분이지
                                           만, 조선시대와 근대불교가 역동
                                           적이지 못하고 풍부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학자들조차도 이 시기 불
                                           교의  사정에  대해  호기심조차도
                                           갖지 못한 실정이었다. 때문에 한

                                           국불교사는 원효나 의상의 불교였

                                           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으
                                           로 기여했던 영광의 불교였고, 불
                                           국사와 석굴암의 불교였다.

                                             반면  조선불교에  대한  대중적

          사진 2.  청허휴정淸虛休精(1520〜1604)  스님의  진영.   관심은  무속신앙과  불교를  같이
              통도사 소장.
                                           취급하여 교조와 교리, 교단이 없
          는 종교였다. 승가는 수행과 자비심, 그리고 승가가 잊지 않고 있었던 사

          은四恩에 대한 사명감마저도 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결

          과적으로 불교는 신비스러운 종교였고, 진리와는 거리가 먼 이단의 종교
          로 전락하였다. 더욱이 스님은 혹세무민하고, 천한 노비와 같은 부류였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인식은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근

          대불교에 대한 이해에서도 계속되었다. 한국불교는 개성이 없었으며, 선

          진적인 일본불교를 맹목적으로 배워야 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대접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최근에도 계속되어 근대불교의 이해
          기준을 친일과 항일의 프레임으로 항일불교의 모습을 마치 근대성에 미치

          지 못하거나 한국불교의 정체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편견이 가득하여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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