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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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깨달음으로 오인될
수 있다. 한 생각도 일
어나지 않고 앞뒤가
끊어진 무심이 되었는
데 다시 공부할 필요
가 있겠는가? 하는 자
부심이 일어날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나 성철스님이
사진 1. 봉암사 결사의 주역이었던 성철스님, 청담스님, 향곡스님.
보기에 이것은 큰 병
이다. 무심만 가지고는 견성이라 할 수 없다. 심지어 가장 고차원에 해당
하는 오매일여의 무심경계라 해도 아직 진여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가
로막는 불온한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8식 차원의 미세한 번뇌가 바로
그것이다. 무심경계에 자족하여 공부를 멈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
유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무심경계의 “제일 큰 병이 화두를 참구하지 않
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향곡스님은 봉암사 결사에 동참하기 전에 이미 깊은 삼매를 통해
조사들의 마음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그런 경계를 체험한 뒤였다. 내원사
운봉스님 회상에서의 일이었다. 2014년, 부산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해
운정사 전법게 중 운봉→향곡의 전법게도 그때 전해진 것이다. 성철스님
은 그런 향곡스님에게 죽은 뒤에 다시 죽어 되살아나는 차원을 아는지를
추궁하였다. 향곡스님의 성취가 그저 무심에 머무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
을 투과한 끝에 되살아난 경계인지를 물었던 것이다. 이 질문을 받은 향곡
스님은 마음이 담벼락에 부딪힌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침식을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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