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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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져 왔던 것 같다.
               신방화상은  650년(진덕여왕  4)에  현
             장玄奘(602?~664) 법사가 장안長安의 대

             자은사大慈恩寺에서 불경을 번역할 때,

             필수筆受로  참가하기도  한  당대  유식
             학唯識學의 대가였다. 불경을 번역하는
             역장譯場에서 서자書字가 산스크리트어

             로 된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뜻에 알

             맞은 한자로 번안하는 역할을 하는 이
             가 필수인데, 불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
             한 역할이다. 연도로 보면, 신방화상이

             수도산에 머물 때는 청암사 등이 창건
                                                  사진 2. 불영산 청암사 일주문.
             되기 한참 전이다.
               청암사에 들어서면 일주문一柱門을 맞이한다. 여기서부터 속계를 떠나
             붓다의 세계로 들어선다. 세속에 물든 사념邪念을 지금이라도 떨쳐 버려야

             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둥근 기둥을 나란히 세워 팔작지붕을 얹

             은 문은 1976년에 새로 건립한 것으로 1993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일주문에는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1871~1937) 선생이 예서체로 쓴 「불영산
             청암사佛靈山靑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강화도 전등사傳燈寺 대웅전의

             주련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가 구사하던 개성적인 결구結構로 썼다. 옛날

             의 일주문에 있었던 것을 여기에 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김돈희 선생은 역관을 지낸 6대조 때부터 중국에서 구입한 방대한 장서
             를 통하여 신진 문물과 지식을 익히고 사자관寫字官을 지낸 아버지에게서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법학교육기관이자 국립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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