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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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 때에도 과거시험의 폐단을 비판하
며 출사를 거절하고 다방면의 지식 탐구
에 힘썼다. 서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조현명 선생이 이 비문을 지었을 때는
조구명 선생은 이미 7년 전에 세상을 하
직한 후였다. 서명균 선생은 해서楷書에
도 뛰어나 많은 비석의 글씨를 썼다. 쌍
계사의 정혜대사의 비는 현재는 청암사
의 사역에 서 있다. 쌍계사가 폐사되면
서 그 비를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회당비각의 편액은 성당 선생이
썼다. 대운당비각에는 대운당 금운金雲
사진 5. 정혜대사비. (1868~1936) 화상의 비가 서 있다.
권상로 화상이 지은 청암사 사적비
1914년에 건립한 사적비는 당대 학승이었
던 권상로權相老(1879~1965) 화상이 지었는
데, 동국대학교 초대총장을 지냈다. 5년 후
1919년 3·1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로 번져
갈 때 청암사의 승려들은 시위에 참가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하기도 하였
다. 아무튼 3·1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3만
사진 6. 청암사 사적비를 쓴 권상로
화상. 장을 인쇄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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