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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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아름다운 수도암의 도량.
빈을 왕비로 삼으려 하자 박세당 선생의 아들인 박태보朴泰輔(1654~1689)
선생 등 서인들이 대거 반대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변을 겪기도 했다. 시
간이 흐른 후 숙종이 폐비의 일에 대해 후회하는 기미를 보이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1694년에 노론의 핵심인 김춘택金春澤(1670~1717) 등이 드디
어 폐비의 복위운동을 추진하고 이에 저항하는 남인세력을 모조리 잡아
없애는 갑술옥사甲戌獄事를 일으켰다. 김춘택은 종조부가 서포西浦 김만
중金萬重(1637~1692) 선생이고, 할아버지가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金萬基
(1633~1687)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김진구金鎭龜(1651~1704)이다.
갑술옥사 이후 서인인 남구만南九萬(1629~1711) 선생, 박세채朴世采(1631~1695)
선생 등 소론세력이 등용되면서 인현왕후는 왕후로 복귀하게 되었다. 궁으로
돌아간 이듬해인 1695년에 인현왕후는 그 동안 자기에게 덕을 베풀어 준 청
암사의 스님들에게 감사의 글과 함께 비녀, 잔, 가죽신 등을 신표信標로 전
하고 자신이 지내던 곳을 ‘함원전含元殿’으로 현판을 달아 오래도록 복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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