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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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자면 이것이 더 합리
적이다. 그러니까 오매일
여를 부정한다는 것은 유
식에서 말하는 바, 아뢰야
식의 타파로 깨달음이 성
취되는 전식득지轉識得
智의 깨달음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불교의
수행과 깨달음을 자기 수
준의 상식에 가두는 일 외
에 다른 일이 될 수 없다.
불교의 깨달음은 자신에게
일찍이 없던 일의 체험으
로 일어난다. 그것은 직접
사진 4. 나옹혜근 스님.
체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
는 일이다. 미증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오매일여의 경계가 자기에게 이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불가사의한 깨달음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한편 선사들의 어록에 오매일여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들
어 그것이 선문의 보편적 노선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
어록 등에 오매일여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
리는 선종의 여러 기록이 주로 깨달음이 일어나는 현장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심리적 변화가 세세하게 기
술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더구나 오매일여가 깨달음의 필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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