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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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표현하는 점이다.
이를 상세히 논증하자면 상당히 복잡하지만, 결국은 ‘돈오’를 바탕으로
하는 무수무증無修無證과 관련된 사상에 따른 표현이라 하겠다. ‘돈오’에서
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나 수행의 쌓임인 적학積學과 적수積修를 인정하
지 않는데, 공부나 수행은 하면 할수록 새롭게 도달해야만 경계境界가 끊
임없이 현현하여 절대로 궁극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
존釋尊의 가르침이나 돈오의 경지에 오른 조사들의 가르침을 ‘한가로운 명
구’라고 표현하지만, 학인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고자 분주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곤궁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법이 아무리 뛰어
나도 모두 ‘인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와도 일치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표현의 차별은 새로운 사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상당
히 농후하다. 특히 『임제어록』에서 앞의 구절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하
고 있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모두 현변現變에 의지하는 경계이다. 있다고 하
는 것은 보리의 경계에 의지함[菩提依], 열반의 경계에 의지함[涅槃
依], 해탈의 경계에 의지함[解脫依], 삼신의 경계에 의지함[三身依], 경
지의 경계에 의지함[境智依], 보살의 경계에 의지함[菩薩依], 부처의
경계에 의지함[佛依]일 뿐이다.” 8)
여기에서 말하는 ‘현변’은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중본기경中本起經』 등
의 「현변품現變品」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본래 깨달은 존재인 석존釋尊도
8)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9c), “設有, 皆是依變之境. 有箇菩提依,涅槃依,解
脫依,三身依,境智依,菩薩依,佛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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