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P. 65

치부하는 견해에서 갑자기 ‘일심’이나 ‘일심법’을 인정함은 자가당착의 모
             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육조단경』 출현 이후 남종선이 유행하면서

             ‘일심’과 ‘자성’에 대한 ‘돈오’ 등에 지나치게 훈습薰習되어 참다운 체득 없이

             앵무새처럼 되뇌는 학인들에 대한 경책警責과 함께 체오體悟를 강조하기
             위하여 ‘일심’을 부정한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임제어록』에서는 단 한
             차례도 ‘돈오’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돈오를 배제한다면 『임제어

             록』에서 설하는 내용은 거의 해명할 수가 없을 정도라 하겠다.



                곧바로 지금일 뿐, 다시 다른 시절은 없다



               『임제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저 원圓·돈頓 보살은 법계法界에 들어가 몸을 나타내어 정토淨
                  土를 향하면서 범부凡夫를 싫어하고 성인聖人을 좋아한다. 이러한

                  무리는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잊지 못하는데, 더럽거나 깨끗하다

                  는 (분별의)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종禪宗의 견해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곧바로 지금일 뿐으로 다시 다른 시절時節은 없
                  다. 산승이 설하는 바는 모두 한 시기에 병에 따라 약을 쓰는 치료

                  일 뿐으로 실법實法은 전혀 없다. 만약 이처럼 볼 수 있다면 참다운

                  출가出家이다”.    16)



             16)  앞의 책(大正藏47, 498b), “如圓頓菩薩入法界現身, 向淨土中厭凡忻聖. 如此之流取捨未忘, 染淨心
                在. 如禪宗見解, 又且不然, 直是現今更無時節. 山僧說處皆是一期藥病相治, 總無實法. 若如是
                見得, 是眞出家.”


                                                                          63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