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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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할 때 저것이
멸한다’는 연기의 구절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것’, ‘저것’은 원래 십이연기의 각지各支를 대입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
지만, 후대에는 각지와 더불어 존재 전체를 대입하게 되었다. 십이연기를
확장하면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 대
해서 성립하고, 이시적으로뿐만 아니라 동시적으로도 성립하게 된다는 것
이다. 이러한 동시적 상호의존성의 전형은 후대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
起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 여기서는 법계法界라는 세계가 중층적으로 끝없이 연기하고
개현하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이는 연기적 관계가 무한하고 누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법계연기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연기적 관
계를 가지고 있는 관계적 존재가 된다. 법의 생멸은 연기적 관계에 의해서
생멸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의 생멸의 기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연기적 관
계에 의해서 모든 존재의 생멸이 설명된다. 존재와 운동이 함께 있는 모습
이다. 따라서 연기라는 운동법칙이 존재의 법칙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는 법계연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물이 연기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시적 순서에 따
른 생멸을 설명하는 동시에 동시적인 상호의존성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
다. 이시적 생멸성의 전형은 붓다가 제시한 생로병사의 원인을 찾아가는
십이연기라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는 이시적 순서에 의한 십이연기에 의
한 생로병사의 소멸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승불교는 동시적 상호의존성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연기론은 법론에서 보여준 존재가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보
여주는 것이다. 연기론은 법뿐만 아니라 법에서 파생되는 인식, 세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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