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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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 괴짜로 유명한 분이에요. 법명이 생각 안 납니다.
의병대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출가하기 전 동학혁명에 가담해서 일
본군과 맞서 싸웠대요. 당시의 무용담을 얘기하곤 했는데 발길질하면서 이
리 치고 저리 차면서 했대요. 그런데 선암사에 온 지 열흘 만에 배에 복수
가 차서 그만 돌아가셨어요. 범어사 청풍당에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선
암사의 석암스님이 노장님들을 잘 모신다는 얘길 듣고 온 건가 봅니다.
시신을 염하는 것도 원주 소임이라서
입관할 때 꿀렁꿀렁하는 소리가 들려
요. 절 근처 화장터에서 나무로 화장하
는데 30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선방 스
님들이 계속 지키고 있을 수 없는 상황
이었어요. 그때 황화담이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70세였어요. 이 분이 곡차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한량이에요. 그 스
님은 “곡차 댓 병만 놔주시면, 그거 양식
삼아 내가 성의껏 한잠 안 자고 화장을
사진 4. 설봉스님이 현토한 『선문촬요』.
잘 해드리겠다.”고 해요. 다음날 내려가
보니까 주변 정리를 잘해 놓고 뼈만 추스르면 되겠더라고요.
곡차에 관해서 설봉스님에 얽힌 스토리가 기억에 남아요. 설봉학몽雪峯
鶴夢 스님은 선지식으로 이름난 분이에요. 스님이 선암사에 오셨을 때 69
세가 넘었어요. 마른 체구에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습니다. 말수가 없는데
존경할 만한 노장님이지요. 선에 대한 경지가 높아서 『선문촬요禪門撮要』에
우리말 토를 달아서 범어사 판으로 책을 냈어요.
정진하는 수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설봉스님이 오자 석암스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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