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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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선암사 대중(뒷줄 가운데가 인환스님).


             독방을 내어 드리고, 대중들과는 달리 자유롭게 해 드렸어요. 수좌들은 자

             유 시간마다 『선문촬요』를 들고 설봉스님께 찾아가 질문하거나 선에 대한
             법문도 들었어요. 평소에는 아무 말씀도 없고 조용하게, 참 그렇게 고고해
             보였어요. 주로 당신 방에 계셨어요.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설봉스님이 사라졌어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나는 당황해서 찾아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스님을
             잘 아는 다른 분이 “찾으려 애쓰지 마시오. 이제 얼마 있으면 또 제 발로
             돌아올 겁니다.” 그래요. 그런가 보다 하고 한 닷새쯤 지났는데 동네 사람

             이 와서는 어떤 스님이 동네 입구에 취해서 쓰러져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수좌들과 급히 내려갔더니 설봉스님이 인사불성으로 만취해서 길가
             에 세상모르고 누워 계시더군요. 평소에는 말 없고 점잖은데 술만 취하면
             소리를 지르고 속에 있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술 깨고 나면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더군요. 그 후에도 같은 일을 대여섯 번 겪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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