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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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의 지위를 차례로 밟아 묘각에 이른다는 초주
견성론을 주장한다. 교종의 돈오점수설이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이것
을 분파분증이라고 표현한다. 부분적으로 무명을 타파하여[分破] 그만큼 법
신을 증득한다[分證]는 뜻이다.
성철스님은 분파분증론에서 주로 천태와 화엄의 돈오점수적 지위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번뇌의 일부, 혹은 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초주
의 차원을 견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 지적 이해에 바탕하여 점차적 지
위를 밟아간다면 그러한 수행으로는 강력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그런데 천태나 화엄이 동일하게 10주 초
주에 견성한 뒤 본격적 수행에 들어간다고 주장하지만 그 차원이 천지현격
으로 다르다. 견성이 일어난다는 10주 초주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태의 지위론
천태의 경우, 10신의 차원에서 견사혹과 진사혹을 모두 타파함으로써
10주의 초주에 견성하게 된다고 규정한다. 그런 뒤 10주에서 10행, 10회
향, 10지, 등각을 거쳐 묘각에 이르기까지 42품의 무명을 하나씩 타파하여
그만큼의 진여법신을 증득한다는 것이다. 이때 10주 초주에 진입하기 전
에 타파한다는 견사혹과 진사혹은 거친 번뇌의 총합이다. 이것을 타파하
면 장교藏敎의 아라한에 해당한다. 그래서 천태에서는 다른 그룹의 궁극적
도달점이 자기네 그룹의 본격적 시작점이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이 초주
의 견성을 시작점으로 하여 무명을 조각조각 타파해 나가 그만큼의 진여
를 증득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 차원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천태스님
스스로도 ‘자신은 아직 초주의 지위에 진입하지 못한’ 범부라고 밝혔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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