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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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찰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비구님 스님들
의 세심한 정성과 노력에 의해 절이 파헤쳐지지 않고 잘 유지되어 온 것
으로 보인다.
유학자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운부암
백흥암에서 나와 산 위로 난 산길을 따라 한참이나 올라가면 그 유명한
운부암에 다다른다. 지금은 운부암에 이르면 크고 작은 영지를 만들어 놓고
이름도 맞지 않은 작은 불이문不二門도 서 있다. 원래는 신라시대에 창건되
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중기까지 운부사雲浮寺로 불렸다. 17~18세기에 운부
암에는 많은 고승 대덕들이 주석하여 명성이 높았고, 그래서 경향 각지에서
이곳으로 찾아오는 유학자들의 발걸음도 잦아 시도 많이 남겨 놓았다.
조선시대 전기 태종과 세종 연간에 활동한 대학자인 태재泰齋 류방선柳
方善(1388~1443) 선생은 여러 학자들과 금강산을 유람하기도 하고 모함을
받아 고향인 영천으로 유배를 오기도 했는데, 팔공산을 유산遊山하며 은해
사와 산내 암자들에 들러 시도 여럿 남겼다. 그 중 <운부사雲浮寺>라는 시
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 당시에는 절이 방치되어 허술했던 것 같다.
혼자 운부사를 찾아드니
선방은 고요하며 머물 만큼은 되어 보이고
골짜기 깊어 오가는 수레와 말이 드무니
중은 늙어가지만 세월은 더디 가는 것 같다.
대나무 그림자는 빈 걸상에 침노하고
솔바람은 엷은 옷 속으로 불어오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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