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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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논쟁에 기울어져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광대한 토지를 점유하
고 숱한 노비들을 거느리는 화려한 생활을 하였다. 불교가 한편으로는 세
속의 부귀를 버리고 물질적 향락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사원경제
가 급격히 발전하게 되자 승려들은 사치하고 타락해 갔다.
당시 불교가 마주친 이러한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에서 선불교가 일
어났던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선불교가 주관유심론이었다는 점이
다. 주관유심론이 갖는 의미는 그들의 주장은 논증할 것도 없고 경전에서
논거를 가져올 필요도 없이, 다만 개인의 주관적인 신심에 의거하면 된다
는 것이다.(任繼愈)
모택동이 『육조단경』을 높이 평가한 큰 이유도 혜능이 불성론을 통하여
평등사상을 긍정하였다는 점에 있다. 불성론은 중생이라면 모두 불성을 가
지고 있고 따라서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불성론은 선불
교를 포함한 중국불교 전체의 특색이기도 하다. 혜능은 불성이 지역이나
민족을 나누지 않고 동일하게 모든 사람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았고,
그런 근거에서 하층 민중의 성불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육조단경』에도 혜
능이 오조홍인을 만났을 때 홍인이 그를 남해인이라고 무시하자, 그가 “사
람은 남인과 북인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저는 남쪽의 오랑
캐라 스님과 다르지만,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박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불성론의 사회 정치적 의미는 모든 인간의 평등
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가지고 있고 계급·지역에 관계없이 성불할 수
있다는 이론은 바로 모든 인간의 평등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성론의 평등주의를 모택동이 사회주의 사상과 연관하여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근대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의 하나가 바로 민
중의 평등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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