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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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책을 보면 『서유기』와 관련된 회화들이 자주 보인다. 예컨대 중국에
             서의 생활을 상정한 회화 중에 서점에 가서 “『서유기』를 사자”는 말이 보이
             고,  기타  구문에도  『서유기』에  보이는  ‘황풍요괴[黃風怪]’  ‘홍해아紅孩兒’,

             ‘화염산火焰山’, ‘여인국女人國’ 등의 어휘가 대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고려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책을 살 때  『서유기』가 인기 도서였다는 말이 되고,
             또 중국인과의 정서적 교류에 그것이 주된 화제로 쓰였다는 말이 된다.
               한편 경복궁 등과 같은 궁궐의 추녀마루에 올리는 잡상雜像에도 삼장법

             사와 손오공, 그리고 저팔계 등의 형상이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성리

             학의 삼엄한 사상적 통제가 행해지던 조선시대의 궁궐에 이러한 불교적 형
             상을 올렸다는 것 역시 그 문화적 영향력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
             된다. 요컨대 『서유기』는 고려 이후 우리의 불교계는 물론 일반 독서계에

             널리 읽히던 저작물로서 불교의 진리를 문화적으로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유기』는 어떻게 중국의 국경을 넘어 고려의 인기 도서가 될 수 있었
             을까? 그것은 중국산 불교의 수입과 관련이 깊다. 불교가 거의 국교에 가

             까웠던 고려에는 한역된 경전

             과 중국화된 불교문화들이 대
             거  수입된다.  그렇게  수입된
             불교문화의  하나로  『서유기』

             가  있었고,  그  흥미진진하고

             신비한 모험담이 고려 사람들
             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유기』는 불법

             전파에 있어서 하나의 성공한               사진 2.  『박통사』, 고려의 생활중국어 교본 표지와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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