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P. 113

그중 자은사慈恩寺가 특히 유명했고, 청룡사靑龍寺, 천복사薦福寺, 영수
             사永壽寺 등도 속강의 공연으로 이름이 높았다. 불교의 사찰이 대중들이
             즐겨 찾는 극장이 된 것이다. 이후 이것을 본딴 극장들이 사찰의 밖에 세

             워져 대중들의 문화공간이 되는데 와사瓦舍나 구란勾欄 같은 것이 그 예

             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사찰의 인기 속강 레파도리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극장에 진
             입하게 된다. 여기에 『서유기』의 여러 에피소드가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서유기』와 관련하여 인기 있는 에피소드들을 채록한 이야기 대본

             [話本]이 현재까지 남아 있기까지 하다. 송대에 결집된 『대당삼장취경시화』
             나 원대의 『서유기평화』 등이 그것이다. 이중 원대의 『서유기평화』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려시대 생활중국어 교본(『박통사』)에 보이는 『서유기』인 것

             으로 확인된다.



                복원을 기다리는 『서유기』의 메시지



               중국문학사에서는 이 이야기 대본(화본)을 백화소설의 출발로 본다. 그

             러니까 중국의 소설은 『서유기』와 같은 불교비유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인도에서 수입된 불교의 설법방식
             은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노래(운문)와 설법(산문)을 유기적으로 결합

             한 변화무쌍한 서사방식은 물론이고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주제를 탑재

             하는 방식으로 창조된 비유담은 거의 신세계의 체험에 가까웠다.
               그런데 불교의 교리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비유담들은 사찰의 법회 공
             간을 벗어나 대중들의 극장으로 진입하면서 이야기만 남고 불교의 교리를

             말하는 부분들이 사라지게 된다. 불교적 설법이 사라지는 과정을 역추적해



                                                                         111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