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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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 『화엄경』 등의 해설서를 읽었다. 6개월이 지나 사미계 수계를 했
             다. 이제 김 행자가 아니고 원영스님이 된 것이다.
               소임이 바뀌었다. 큰스님의 공양만 짓는 시찬 소임을 맡았다. 별도의 독

             립된 공간에서 큰스님의 공양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메뉴는 항상 일정하

             여 현미밥, 야채국, 콩조림, 사과, 쑥갓 등 야채들이다. 간장, 된장,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 공양이다. 항상 일정한 양을 맞추기 위해 눈금 저울을 사용
             하였다. 큰스님께서 부산으로 나가실 때는 현미밥솥 등 공양도구 일체를

             싸 가지고 갔다. 저녁마다 표고버섯 물을 달여 드리면 꿀차를 만들어 잡수

             셨다. 열반하실 때까지 이 메뉴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출가 후 2년 쯤 되어 봉암사로 가서 해제 동안의 결제에 참석했고, 되돌
             아와서 곧바로 해인사 선방에 들어갔다. 여름 한 철을 지내고 또 해제·결

             제를 하기 위해 칠불암으로 출발하는데, 해인사 입구 매표소에서 전갈을

             받았다. 백련암으로 전화를 하니 큰스님께서 부산으로 가게 되었으니 시
             찬은 함께 가라는 것이다.
               그 다음해 여름을 또 해인사 선방에서 지내고, 해제 날 다시 칠불암으로 출

             발했다. 매표소를 지나고, 버스를 타고, 또 바꾸어 타고 하여 칠불암 마당에 도

             착했다. 이미 전갈이 와 있었다. 큰스님께서 팔을 다쳐서 부산으로 갔으니 곧
             바로 오라는 것이다. 마당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타고 올라온 그 차로 곧
             바로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큰스님께서 회복

             하시어 백련암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수년간 계속 백련암에서 시봉했다.



                큰스님의 시자 시절의 영상 기록



               부산에서 돌아온 이후 소임이 바뀌어 시자를 하게 되었다. 큰스님 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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