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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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분들이 합심하여 이곳에 작은 집을 지었다. 내가 이곳에 생활하면서 학
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듬해 부처님을 모셨고, 큰스님께서는 정심사正心
寺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광덕스님을 초청해서 점안식을 했다.
이후 원택스님과 함께 가끔 광덕스님께 인사를 갔다. 한번은 『선문촬
요』의 편집자에 관해 물어보았다. 광덕스님께서 범어사에 계시면서 출판
한 『선문촬요』에는 경허스님이 편집자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경허스님
생전에 『선문촬요』를 편집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스님께서 웃으시며 말
씀하셨다. 이렇게 좋은 책을 편집할 수 있는 분은 경허스님뿐이라는 생각
에서 당신이 직접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훗날 다른 연구에서는 서산스님이 편
집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제 정심사를 운영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절에서 행하는 예불과 제사
등 모든 활동은 백련암과 똑같이 했다. 신도들은 모두 백련암 다니는 분들
사진 3. 하남 정심사 대웅전 건립 개토식(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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