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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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도시의 전통이나 관습과는 거리를 둔 채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
             던, 탁발승들의 종교적 목적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청정 비구와 비구니로 구성된 승가 공동체는 세상 또는 다른 사람들과

             의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도덕적 담론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시공간

             이다. 재가자의 재보시와 출가자의 법보시를 서로 교환하는 최소한의 경
             제활동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사부대중 집단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질
             서의 확립 및 계율의 위반에 상응하는 처벌은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율장은 승가 집단 내부의 문제 해결 방식과 절차를 담아 놓은

             행위규범집이었지 일반사회의 공통적인 관심사까지 수용, 반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계율의 확립과 준수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

             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도덕 교과서였던 셈이다. 그런 만큼 그것 자체가

             곧 출가의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불교가 형이상학적 깊이에 반해 윤
             리학적 사고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은 이런 종교적 성립 배
             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불교 윤리의 학문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의 윤리학적 흐름

             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어제의 ‘약속 및 관습 또는 규범’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행위에 대해 ‘옳거나 그르다(right or wrong)’고 판단하
             는 이른바 의무론과 오늘 선택하는 이 행위가 내일의 행위 목적에 비추어
             과연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미리 계산해서 ‘좋거나 나쁘다

             (good or bad)’고 판단하는 목적론 혹은 결과주의적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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