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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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와 맞물린다. 불법은 오히려 암흑
에서 더욱 빛나는 법, 에사이의 구법
과 임제교단의 창건 또한 불법 스스
로의 영능靈能에 의한 것이다.
에사이에 대해서는 천태의 그늘에
서 활약한 밀교승으로서의 이미지와
독립된 선종 교단을 확립했다는 선
사로서의 이미지가 겹친다. 전자는
사진 1. 목조 묘안 에사이明菴榮西 선사 좌상(수복
사 소장). 11세에 출가, 오카야마현 안양사安養
寺의 조신靜心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학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13세에 비
예산比叡山에서 천태종의 정식 승려가 되었다.
17세에 스승이 열반하며 센묘千命를 따르도록 유언했다. 그는 에사이에
게 천태밀교와 허공장구문지법虛空蔵求聞持法를 가르쳤다. 후자는 허공장
보살의 진언을 외는 것으로 두뇌가 명석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태 본
산에서는 밀교 관정도 받았다. 당시 천태종은 권력과의 밀착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억압된 사령寺領의 농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현실에 좌
절한 에사이는 송나라에 가서 본격적인 불법을 배우고자 뜻을 세웠다.
1168년 하카타에서 출발, 드디어 명주에 도착, 마침 동대사의 승려 초
겐重源을 만나 함께 천태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아육왕산에서 함께 선을
배웠다. 장시간 수행에 차를 마시면 졸음이 가시는 것을 느끼고, 훗날 『끽
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저술하는 기연이 되었다. 이 덕분에 일본의 다조茶
祖로도 널리 알려졌다. 6개월 뒤에 귀국, 천태좌주 묘운明雲에게 천태장
소天台章疏 60권을 증정했다. 고향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밀교의 수행에
도 노력했다. 고토바왕後鳥羽王은 에사이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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