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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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차별상이 분명한 분별의 세계다. 분별의 세계를 떠나 무분별을 체
험하고 다시 분별의 세계로 돌아오는 길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체험하고 이 세계에 돌아와 그것을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
과 같다.
그런데 돌 원숭이가 이에 응답한다. “내가 들어가 보겠다!” 그리고는 눈
을 감고 쪼그렸다가 몸을 던져 폭포 속으로 뛰어든다. 두 눈을 감는 것은
둘로 나누기를 멈추었다는 뜻이다. 쪼그렸다는 것은 자아를 항복시켰다는
뜻이다. 폭포 속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스스로 그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마
음을 관찰한다고 할 때에도 관찰 주체로서의 마음과 관찰 대상으로서의 마
음이 설정된다. 여전히 주체와 대상이 나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면 몸소 그것이 되어 직관하는 입장[同體大智]이 되어야 한다. 돌 원숭이는
눈 감기(분별 멈추기)와 쪼그려 앉기(자아 내려놓기)와 뛰어들기(스스로 그것이 되
기)의 실천을 통해 그것을 성취한다.
분별의 두 눈을 감으면 무분별의 한 눈이 뜨인다. 자아를 내려놓으면 연
기緣起가 보인다. 스스로 뛰어들면 중도가 확인된다. 돌 원숭이가 폭포에
뛰어들자 그 일이 일어났다. 돌 원숭이가 폭포에 뛰어들어가 보니 폭포는
없고 하나의 철판교가 걸린 동굴이 나타났다. 그 동굴은 철판교 아래에서
솟아나는 물, 철판교, 돌 가구들이 갖추어진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철판교 아래에서 솟아나는 물이 있다. 밖에서 폭포처럼 보였던 것은
이 철판교 아래의 물이 바위의 틈에 흘러 들어가 분수처럼 솟구쳤다가 아
래로 떨어지는 물줄기였다. 그것이 폭포처럼 떨어지면서 동굴을 가리고 있
었던 것이다.
마음은 본래 비어 있는 것이다. 6식은 물론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이
모두 실체가 없다. 다만 무명의 샘물이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고 있을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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