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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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異], 오고 감[來去]의 두 측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거나 지향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걷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걷다 보
면 필연적으로 중도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하필이면 다리가 끝나는 지점
의 정중앙에 돌 비석이 세워져 있어야 하는 이유다. 비석이 말하는 것처럼
중도는 꽃과 열매가 동시에 성립하는(화과산) 복된 자리(복지)이고, 분별이
사라져(수렴동) 세계 속에 숨은 세계(동천)를 보는 자리다.
그중 철판교는 분별의 폭포와 무분별의 동굴을 연결하는 다리다. 그것
은 반드시 가운데를 걸어야 하고 가운데로 도착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는
일을 묘사하면서 과정의 가운데, 결과의 가운데를 강조한 이유다. 용수가
설파한 것처럼 둘로 나누는 분별 자체가 허망하다. 만법에 실체가 없어 세
계는 오로지 연기일 뿐이다. 연기공을 내용으로 하는 중도의 실천은 무분
별심으로서의 진여에 직접 도달하도록 이끈다. 그런 점에서 공은 실체의
없음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참된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공=
무분별=진여다. 돌 원숭이가 철판교 가운데를 걸어 정중앙에 도착하여 돌
살림살이가 완비된 돌 동굴을 발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 동굴에 들어가기
돌 원숭이가 철판교를 건너서 만나는 수렴동의 돌 동굴과 돌 가구들은
숨겨진 부처, 여래장을 말하기 위한 장치다. 먼저 수렴동, 즉 폭포 커튼[水
簾] 동굴[洞]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분별과 무분별의 불이적 결합을
의미한다. 무분별 실천의 도착점인 동굴은 온갖 가구들이 감추어져 있다
[藏]는 점에서 여래의 창고[如來藏]의 상징이 된다. 돌 원숭이가 돌 동굴에
들어가는 것은 모태 속으로 회귀하는 일과 같다. 그렇게 돌 원숭이는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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