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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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처럼 근원이 되는 마음에 실체가 없으므로 그것을 뿌리로 하는 자아
와 세계 또한 실체가 없이 공하다. 그래서 돌원숭이는 외친다. “물은 없다!”
철판교 건너기
비어 있으므로 동굴이다. 여기에서 동굴의 동洞은 비어 있다[空]는 뜻이
다. 그런데 『서유기』의 동굴은 비어 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다. 동굴이 비어
있기만 했다면 돌 원숭이가 바깥의 원숭이들을 동굴 속으로 초대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돌 동굴에는 원숭이들을 안주시킬 돌 솥, 돌 아궁이, 돌 사
발, 돌 화분, 돌 침대, 돌 의자의 살림살이들이 천연적으로 차려져 있었다.
이곳에 가려면 철판교를 건너야 한다. 돌 원숭이는 철판교의 가운데를
걸어간 끝에 다리가 끝나는 지점의 정중앙에서 돌 비석을 발견한다. 비석
에는 화과산의 복된 땅[花果山福地], 수렴동의 별세계[水簾洞洞天]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에서 철판교는 중도 실천의 안전성과 견고성을 상징하
는 장치다. 중도를 실
천하는 길이므로 원
숭이는 다리의 가운
데를 걷는다.
철판교의 가운데
는 다리의 좌우,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
는 지점이다. 생성과
소멸[生滅], 영원과 허
무[常斷], 같음과 다름 사진 3. 원숭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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