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2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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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의 이름을 숭복사로 했다. 단에는 불감선사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인
          물로 후에 엔니의 제자가 되었다. 엔니가 주석하던 하카타의 승천사承天
          寺와 이 숭복사에 대해 기존의 사찰에서 박해를 가하자 조정에서는 두 절

          을 관사로 삼았다. 이에 엔니는 불감이 써준 칙사 두 글자를 높이 내걸었

          다고 한다.
           이처럼 엔니의 임제종은 국가와 밀접한 관련을 통해 성장하기 시작한
          다. 도겐[道元]의 조동종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도겐의 스승인 천동여정

          은 포교에 대해 국왕이나 대신들에게 접근하지 말고 취락성읍에 거주하

          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후쿠이현의 깊은 산 속에 영평사를 개창한
          것은 그 뜻을 받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중세의 선종 5산
          10찰에는 조동종의 사찰은 한 곳도 소속되지 않았다. 임제종 사찰이 대

          부분을 차지했다.

           불감이 주석했던 항주 경산은 당시 선종 5산의 제1찰로 오랫동안 지위
          를 누리며, 남송의 황제나 관료, 사대부들의 외호를 받아 불법을 전파했다.
          그의 경험이 엔니에게도 일관된 포교 전략이 되도록 전한 것이다. 고대의

          불법은 실제로 왕권이나 세도가들의 비호를 받아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고대 동아시아불교의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여러 왕이나 상왕, 권력가들은 엔니를 초청하여 강설을 듣거나
          보살계를 받기도 했다. 『원형석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당

          시 권력자인 타이라노 토키요리[平時賴]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지금 각 지방에서 행하는 설법들은 다 다릅니다. 어떤 자는 “망녕된
              마음이 인연에 따라 일어나서 생겨남과 사라짐이 있게 되었고, 참된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고 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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