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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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없다. “과거·현재·미래의 그 누구라도 나만큼 하기는 어려울 것”이
라고 말할 정도의 극한 고행이었다. 겨우 목숨만 근근이 유지될 정도의 고
행이었다. 죽음 문턱에까지 밀어붙인 고행이었지만, 소득은 없고 몸만 망
가졌다.
진퇴양난의 고비에 봉착했다. 가던 길은 끊어졌고, 새 길은 보이지 않는
다. 그러나 새 길을 찾아야 한다. 못 찾으면 인생 실패다. 환속해서 세간
관행에 묻혀 살며 허무에 시달리거나, 제 길 못 찾아 방황하는 유랑자가 되
어야 한다. 가히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기로岐路이다. 모든 것 걸고 감행한 여
정인데,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 청년 고타마
싯다르타의 불안과 고뇌가 전해진다.
구도의 길에 올라 남들 하는 대로 다 해보았다. 남들 하라는 대로 격렬
하게 끝까지 해보았다. 그러나 실패했다. 하라는 대로, 체득해 보라는 대
로, 해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길 따라 끝까지 갔는데 도달한 곳이 엉뚱했
다. 길에 문제가 있었다. 목적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었다. 기대와는 다
른 곳으로 안내한 길 끝에 앉아 황망한 고타마 싯다르타. 온갖 사념이 덮
쳐왔을 것이다. 좌
절에 따른 회한悔
恨과 불안이 엄습했
을 것이다. 그러나
영웅의 면모는 항상
낭떠러지 앞에 설
때 빛을 발하는 법.
그럴 때 영웅은, 후
사진 1. 감각적 쾌락이 넘쳤던 싯다르타 태자의 궁중생활, 간다라(2~3세
기), 파키스탄 카라치박물관. 사진 유근자. 회와 체념, 절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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