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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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오랫동안 익혀 내면화된 ‘아트만·브라흐만 궁극실재’ 관념에서 자유
             롭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불변·절대·전능의 아트만·브라흐
             만 궁극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수용하

             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궁극실재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

             이라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식과 이론 수립 능력으로 교학 형
             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붓다 입멸 후, 붓다의 법설에 대한 최초기의 해
             석학인 아비달마 교학 이론에서부터 열반을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로 간

             주하는 관점들이 횡행한 것은 이런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불교 내부에 자

             리 잡은 이 ‘불변·절대의 궁극실재 선호 사유’가 열반에 대한 비불교적 관
             점을 옹호하고 변형시키면서 지속시켜 온 원인이다.
               두 번째는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를 설정하지 않고도 근원적인 자유

             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라는 점이, 충분하게 혹은 적절히 이해되거나 해

             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붓다가 설한 길, 그 중도의 여정은 <‘관계 속
             에서 역동적으로 변하는 현상들’을 초월하여 ‘불변의 동일성이 영속하는
             실재나 세계’에 소속되는 길>이 아니다. 붓다의 길은 <‘변화·관계 속에서

             인과적 응집성을 보여주는 현상들’과의 고리를 끊지 않은 채, ‘변화·관계

             로 인해 겪는 인간의 불안과 고통’을 원천에서부터 치유해 주는 길>이다.
             필자는 이 길에서의 행보를, ‘넘실대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파도타기 능
             력을 익혀 유희하는 것’에 즐겨 비유하곤 한다. 붓다의 길은, 끊임없이 요

             동치는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것도 아니고, 동요하는 파도가 아예 없

             는 땅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붓다의 길에서 누리는 열반의 자유와 안락
             은, 파도타기의 유영遊泳에서 경험하는 ‘빠지지 않는 자유와 즐거움’에 대
             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파도타기 기술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로움을 제

             대로 그리고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도中道 학인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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