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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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으며, 그러한 과보는 삼세三世에 걸쳐서 상속받아 이른바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발생한다.

           이미 현생에 몸을 받아 출현했다면, 이는 과거의 업의 결과이고, 그로부

          터 추론해 간다면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의 나는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불교를 공부하는 견해에서는 생
          사生死와 생멸生滅의 현상은 그다지 커다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는 본적

                                                                 2)
          의 스승인 양개의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함이 가장 커다란 괴로움” 이라는
          말과 같이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만이 덩그렇게 남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
          나 심지어 지금의 우주가 파멸한다고 해서 우리 존재가 절대로 끝날 수 없
          음이 여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학인의 ‘병’은 본적이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어 줄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너
          를 살리지도 죽이지도 못한다.”라고 설파하고 있다고 하겠다.



            일체중생이 병든다면 바로 중생이 아니다



           『조산어록』에서는 또한 ‘병’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어떤 승려가 선사에게 “옛사람이 ‘나에게 큰 병이 있는데 세속에서

              고칠 병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어떤 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묻자 선사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병이다.”라고 하였다. 승




          2) [日本]慧印校,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1c), “不明大事, 是名最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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