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1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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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조산어록』에는 이러한 사상적 취지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문구
가 실려 있다.
승려가 “만법萬法은 어디에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전도顚倒함에 따라 발생한다.”라고 하였다. 승려는 “전도하지 않
았을 때도 만법이 여전히 존재합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존재한
다.”라고 하였다. 승려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전
도해서 어쩌겠는가?”라고 하였다. 6)
승려가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선
사는 “너는 홍주성洪州城의 그 수많은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를 말해
보아라.”라고 하였다. 7)
첫 번째 인용문에서의 문답은 만법의 발생이 바로 진리에 미迷하여 ‘전
도’되어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에도 과연 만
법이 존재하는가를 묻는데, 이에 대한 답변이 흥미롭다. 선사의 “전도해서
어쩌겠는가?”라는 대답은 사실 그러한 물음 자체가 이미 전도된 견해임을
지적하는 것이라 하겠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바로 자재自在를 이룬 사
6) [日本]慧印校, 『撫州曹山元證禪師語錄』(大正藏47, 528b), “僧問: 萬法從何而生? 師曰: 從顚倒生. 僧云: 不
顚倒時, 萬法何在? 師曰: 在. 僧云: 在甚麽處? 師曰: 顚倒作麽?”
7) 앞의 책. “僧問: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師曰: 汝道, 洪州城裏如許多人, 甚麽處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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