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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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했습니다.  물론 80세를 사신 분과 30세 초반에 죽음을 맞게 되는 분이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음에 대해 보인 태도도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깨달음에 이른 이들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더욱 대조적인 것은 키사 고타미라는 여인이 죽은 갓난아기 아들을 옆에 끼

             고 부처님을 찾아와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동네로 가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으로부터 겨자씨를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동네로 가서 겨자씨
             를 구하면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후, 죽음의 실상을 보
             여준 부처님의 자비를 깨닫고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루살렘 가까이 베다니라는 곳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

             아 두 자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이 자매는 예수님께 자기들 오빠를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무덤으로 가서 죽은 지
             3일이 된 나사로를 향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여 나사로를 부

             활시켰다고 합니다.



                결어



               물론 불교도 윤회를 믿고 기독교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에 적어도 이

             론적으로는 현세의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는 다 같이 덤덤할 수가 있지 않
             을까 생각합니다.


             2)  이 말은 시편(22:1)에 나오는 말로 전체 문맥을 보면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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