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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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재위 3년(1394)에 삼척, 강화도, 거제 및 여러 지방에 나뉘어 수
용되어 있던 고려 왕족들을 처형하였지만, 그 이듬해인 태조 4년(1395) 2월
에 삼척 삼화사, 개경 관음굴, 거창 현암사에서 매년 봄가을로 왕씨들의 영
혼을 위로하기 위한 수륙재를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려 왕족
을 위한 수륙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강원도의 수륙사인 상원사가 화재를 당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절의 수륙재는 고려 왕씨를 위한 것이다. 또 경상도의 현암사
도 이미 화재를 입었으니 혁파하라.” 하였다.
- 『세종실록』 7년, 1425년 12월 19일.
삼화사의 수륙재는 얼마 후 상원사로 이전되었다가 화재를 이유로 폐지
되었다. 이때 현암사 역시 화재를 이유로 폐지되었으며, 관음굴의 수륙재
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지만 함께 폐지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조선 왕실에서는 고려 왕족이 계속 대중의 기억에 소환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무주고혼의 천도와 왕실의 상례로써 수륙재
이 외에도 무주고혼을 위한 수륙재가 한강변이나 북한산 진관사 등지에
서 자주 설행되었다. 진관사에서는 태조에 의해 수륙사水陸社가 설치되고
공사가 끝나자 임금이 직접 행차하기도 하였고, 세종대에는 효령대군이 한
강변에서 7일간 수륙재를 설행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망자를 위한 칠칠재로서 수륙재는 태종비인 원경왕후 국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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