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P. 170

속시켜야 하지만, 일체법에 집착하여 머묾은 바로 법에 계박되므로 무주
          를 제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체법에 머묾이 없는 상태를 양개는 바로
          조도라고 표현했다고 하겠다.

           이처럼 조도는 사실상 무주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

          에 양개가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바로 모름지기 발아래에 사사로움
          이 없게 가라.”라고 한 말은 철저하게 상相을 일으키지 말고 머묾이 없이
          행하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이미 자타自他라는 법

          의 경계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고, 사사로움 역시 그에 따라 발생하는 일이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조도는 능소能所가 희석된 돈오를 의미하는 것
          이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승려가 그렇다면 본래면목이 아닌가를 묻자 양
          개는 그것은 전도된 견해로 “노비를 고위 관직자로 아는가?”라고 힐난하

          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승려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를 묻자 양

          개는 “조도를 행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여기에서 양개의 의도는 명확하
          다. 조도가 비록 참다운 본래면목을 현성現成하는 것이라 해도 그에 대한
          천착이 있다면 결코 조도가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쇠사슬 그물과 같은 망집을 녹이는 현로


           삼로접인의 두 번째인 현로玄路에 대하여 양개는 「현중명」에서 다음과 같

          이 설하고 있다.



              현로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비록 공空의 체體는 적연寂然하지만 뭇
              움직임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구句가 있는 가운데 구가 없으니 묘

              함이 체體 앞에 있으며, 말 없음 가운데 말이 있으니 길을 돌아 다



          168
   165   166   167   168   169   170   171   172   173   174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