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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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6호 | 일본선 이야기 8 | 종교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 조동
종의 분열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발
단은 도겐의 사후, 고운 에조孤雲懐
奘(1198∼1280)의 뒤를 이어 영평사 3
일본 조동종 교단의 대 주지를 맡은 뎃츠 기카이徹通義
내부 분열과 도약 介(1219∼1309)를 둘러싸면서 일어났
다. 1272년 기카이가 퇴위한 뒤에 다
시 에조가 주지에 취임했다. 1280년
원영상 원광대 교수
그가 열반하자 기카이는 영평사 산
록에 지은 양모당養母堂에서 노모를
모시며 사찰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
다. 그리고 지금의 이시카와현 남부
에 대승사大乘寺를 개당했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삼대상론과 분파
그 사이 기엔義演(?∼1314)이 4대
원영상 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 주지가 되었다. 기카이와 기엔은 에
교학회 전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
조의 문하에 속했지만 둘의 사후 각
장,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 각의 제자들이 서로 영평사 3대를 주
(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
教と社会』(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장하고 위패를 만들어 조사당에 모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시고자 했다. 결국 양쪽 다 전주前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
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住로 받들기로 하고 논쟁은 가라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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