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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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논을 몇 마지기 가지고 있고, 밥은 그런대로
굶지 않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국민학교였지요.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그러지요. 이서면 상
개리에 있는 이서초등학교(1923년 이서공립보통학교로 개교)를 다녔습니다. 중
학교는 전주동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역사가 최고로 깊
은 지금 아마 금년(2010)에 100주년(1910년 공립 전주농림학교 설립)이라고 그럽
디다. 그때는 농림중학교였지요. 농림중학교로 해서 나중에 중학교와 고
등학교로 나누어(1951) 전주농림고등학교라고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저가 아마 45회인지 그렇게 입학해서 중학교와 고등학
교를 졸업했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중학교 다니고 고등학교 다닐 때 저
혼자만 다녔습니다. 100여 호 되는데, 생활이 열악한 것도 있지만 교육
에 대해 부모님들이 큰 관심이 없었어요. 다만 저희 부친께서는 달랐습
니다. 저희 부친의 고향은 전라
북도 임실군입니다. 그런데 우
리 종가 버들 유씨[柳氏] 종가에
서 우리 아버님을 장손으로 양
자로 들이셨답니다. 그런데 양
자로 오시기 전 그 집안이 넉넉
하지를 못하신 거 같습니다. 아
버님은 선비신데 양자 오셔서
농사를 지었지만 철저하신 어른
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제사 지내고 시제 모
사진 1. 미룡당 월탄대종사 진영. 실 때 아버님이 도맡아서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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