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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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쓰거나 축문을 쓰셨습니다. 그런 선비 농부였습니다. 슬하에서 나는

          두 형님을 모시고 두 누나를 모시고 밑에 남동생 하나 이렇게 해서 가족
          이 살았습니다. 형제들도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저 혼자 고등학교를 졸업

          했습니다. 소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중학
          교는 고등학교와 분리되면서 제가 제2회로 입학했습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



            내가 봐도 성적은 별로이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축구선수를

          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는 전라북도에서 우승을 한 번 했고, 고등학교
          다니면서 또 축구부장을 했는데 한 번도 우승을 못했어요. 하하하. 그

          런데 축구를 하면서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최초로 태권도가 들어왔어요.
          한 번도 축구 우승을 못하니까 나는 “개인 운동을 해야지. 단체운동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랬어요. 태권도를 1학년 2학기 때부터 해서 공인
          5단입니다. 이 태권도 계통에는 여러 종이 있었습니다. 청도관, 지도관,

          또 창무관 뭐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리는 지도관 계통인데 서울

          에 가면 한국체육관이 있습니다. 한국체육관 전주지부입니다.
            이 무술은 옛날 중국에 달마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처음 만들
          어낸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지혜 지智 자, 길 도道 자 지도관智道館인데

          실제로는 공수도空手道라고 그럽니다. 빈손으로 무술을 연마한다고 해요.

          옛날에 중국에서 스님들이 농사를 짓는데 도둑놈들이 와서 농산물을 도
          둑질해 가도 승려들이 막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때는 달마스님이 어떤 어

          른인지도 몰랐지. 그 달마스님이 공수도 즉 빈손으로 도둑들을 막기 위
          해서 무술을 한 것인데, 바로 이 공수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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