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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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下 109
면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하고,추워도 옷을 입지 말아야 하
며,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따뜻한 집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하고,길을 가도 남이 닦아 놓은 길로는 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
다.그러므로 이렇게 하다가는 머지 않아 죽게 될 것이 분명합
니다.정말로 이와 같이 한다면 먹는 곡식은 농사를 지어서 나
왔고,걸치는 옷은 베틀에서 만들어졌으며,사는 집은 건축하고
보수하는 데서 나왔고,밟고 다니는 도로는 길을 개척해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가령 사람들이
제각기 세상일을 분담해서 하지 않는다면,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어찌 얻겠습니까?
또 이것은 바로 지금 도를 수행하는 이 몸이 본래는 없었는
데,부모가 양육해 주신 노력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
니다.더욱이 부모가 어루만지고 안아 준 수고로움으로 자랐다
는 것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예로부터 도가 광대
하고 덕이 구비된 불조(佛祖)께서도 모두 밥 먹고,옷 입고,가
옥에서 거주하며,땅을 밟고 걸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입
니다.불조들은 확연히 깨달은 원만청정한 자심(自心)이 법계에
가득 차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므로,한 찰나 사이에 팔만 번
뇌를 8만 불사(佛事)로 바꾸어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영가(永嘉)스님께서는,‘한 법도 보지 않으면 바로
여래(如來)이니 비로소 ‘보는 것이 자재한 보살[觀自在菩薩]이라
이름한다’고 하였습니다.어떻게 자심(自心)을 깨닫는 것 외에
다른 법이 있어 번뇌가 되겠습니까?이 때문에 화엄회상(華嚴會
上)의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은 모두 번뇌에 의지하여 보살도(菩